2025 한식 컨퍼런스 전통 창의 발효 미식 교육
2025 한식 컨퍼런스: 전통과 창의가 만나 발효와 미식, 교육의 미래를 연 행사에서 한식의 글로벌 경쟁력이 선명해졌다.
APEC 정상회의의 한식 화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삼청각 일화당에서 열린 컨퍼런스는 발효 문화의 철학과 파인다이닝의 섬세함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페란 아드리아와 세계 각국 셰프들이 제시한 교육·혁신·표준 전략을 통해, 김치와 장 문화를 중심으로 한 K-푸드의 도약 시나리오가 구체화됐다.
전통, 동시대의 언어로 되살아나다
삼청각 일화당에 울려 퍼진 것은 박수 소리만이 아니었다. 고전과 현대가 정교하게 만나는 접점, 즉 전통의 재해석이 주는 묵직한 감동이 공간 전체를 단단히 채웠다. 광주 육전과 전라도 묵은지로 빚은 오색전의 정갈한 원형 플레이팅은 한식 고유의 미감을 현대적 미장센으로 끌어올렸고, 전통 다과 상차림은 조란·찹쌀 약과·오미자 배정과·매작과 등 누적된 시간의 풍미를 세련되게 보여줬다.
한편 마당에서 선보인 한식 기반 파인다이닝 핑거푸드는 전통의 기술을 현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훌륭한 사례였다. 백태콩 샐러드는 부드러운 폼 속에 콩의 고소함과 제철 과채의 산뜻함을 담아 식전의 기대감을 우아하게 끌어올렸고, 다시마로 감싼 전복 만두는 김 소스의 감칠맛으로 질감과 향의 균형을 노련하게 완성했다. 갈비 스톤은 갈비찜의 서사를 동시대적 오브제로 치환해, 고기·치즈·흑미·퀴노아가 켜를 이루며 입안에서 입체적으로 터지도록 설계됐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한식의 정체성은 제철·절기·발효·상생의 윤리에서 비롯되며, 그 DNA는 형식이 달라져도 본질을 잃지 않는다. 정갈한 담음새, 절제된 맛의 농도, 재료를 아끼지 않는 진정성은 그 자체로 문화적 문장이다. 전통의 맥락을 지키며 표현을 갱신할 때, 한식은 ‘향수의 음식’이 아니라 ‘현재의 미식’으로 도약한다. 결국 전통은 그대로 보존되는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감수성으로 끊임없이 편집·확장되는 살아있는 시스템임을 이번 컨퍼런스가 입증했다.
그 결과, 한식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와 미각적 논리를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한 접시의 스토리텔링이 국적과 문화를 넘어서 설득력을 얻고, ‘한국다움’이 세계의 보편성 속에서 품격 있게 발화된다. 전통을 동시대의 언어로 되살리는 일, 바로 그곳에서 한식의 내일이 단단해진다.
발효, 건강과 맛을 잇는 과학
권우중 셰프가 짚어낸 한국 채소 발효의 계보는 놀라울 정도로 촘촘했다. 산이 많은 지리, 긴 겨울과 저장의 지혜, 다종다양한 재료 사용이라는 환경적 조건이 김치·장아찌·장·효소·식초로 이어지는 탄탄한 조리 체계를 만들었다. 특히 김치는 유산균과 식이섬유, 미세한 산도의 균형이 낳는 ‘맛의 지속성’과 ‘장내 건강’이라는 과학적 근거 덕분에 글로벌 웰빙 트렌드와 깊이 맞물려 있다. 공짜 반찬이 아니라 하나의 요리, 하나의 카테고리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은 시장 전략의 전환점이다.
핵심은 프리미엄화와 사용성 확장이다. 중국산 저가 공세에 대응하려면 원산지·제조공정·숙성 데이터가 투명한 상향식 프리미엄 포지셔닝이 필요하며, 레스토랑과 리테일에서 모두 통하는 ‘요리형 김치’ 라인업을 구축해야 한다. 더 나아가 레시피 번거로움을 줄이는 밀키트·세트 플레이팅·소스 페어링 패키지로 접근성을 높이면, 해외 일반 소비자도 부담 없이 ‘김치를 요리로 먹는 경험’을 반복할 수 있다. 여기에 글로벌 표준어로서의 영어 교육과 스토리텔링 강화가 결합되면, 김치는 단순 카테고리를 넘어 브랜드가 된다.
실행 관점에서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한식의 발효 과학을 표준화된 언어로 정리하고, 관능·영양·미생물 지표를 결합한 품질 매트릭스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할랄·비건 등 규격 다변화와 원재료 대체 전략을 구체화해 수출국별 레귤레이션을 유연하게 통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셰프·연구소·기업이 동시에 참여하는 R&D 콘소시엄을 통해 제품-메뉴-콘텐츠를 동시 기획하는 ‘풀스택 혁신’이 요구된다.
다음의 전환 과제가 특히 중요하다:
- 프리미엄 김치 표준 수립: 숙성일수, pH, 염도, 유산균 수치의 투명 공개
- 요리형 김치 개발: 메인·사이드·소스용 세분 제품과 페어링 가이드
- 글로벌 밀키트화: 현지 식재와의 결합, 다국어 레시피·콘텐츠 동시 제공
- 스토리텔링·교육: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영문 교육자료, 시연·테이스팅 투어 상시화
교육, 미식 생태계를 완성하는 마지막 고리
페란 아드리아는 “미식은 교육이 받쳐줄 때 위상을 얻는다”라고 단언했다. 이는 단순한 조리학 교육의 확장이 아니다. 학부·대학원 수준의 전문 커리큘럼에서 조리 과학, 발효 미생물학, 식문화사, 서비스 디자인, 지속가능성, 데이터 분석을 유기적으로 묶어야 한다는 요구다. 강민구 셰프가 강조한 현장 실습 강화와 커리큘럼 차별화, 박정현·베룬·아이스 셰프들이 공감한 ‘자국 전통에 대한 자부심’ 교육은 결국 ‘이론-현장-정체성’의 삼각 편대를 구축하자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산학 협력형 테스트 키친과 리빙랩이 필요하다. 셰프와 연구자, 스타트업과 식품기업이 함께 제품을 공동 개발하고, 실험 메뉴를 실제 고객에게 검증받는 순환 구조를 만들면 학습 속도와 성공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또한 미식 데이터 표준을 마련해 관능 평가·원가 구조·탄소 배출량·영양 가치 등을 정량 기록하면, 메뉴 의사결정이 직관을 넘어 증거 기반으로 진화한다. 이는 K-푸드의 글로벌 스케일업에 결정적인 경쟁력을 부여한다.
더불어 국제 교류는 필수다. 호세 아빌레즈가 언급한 창의성과 다양성은 교실 안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해외 페어 스쿨, 셰프 레지던시, 공동 팝업 다이닝, 지역 식재 탐방 프로그램을 상시화하면, 학생과 실무자는 낯선 재료·기술·고객과 맞부딪치며 감각을 확장한다. 정부의 ‘글로벌 NEXT K-푸드 프로젝트’와 연계해 장학·인턴십·수출 실무 교육을 패키지화하고, APEC 기간 운영된 K-푸드 스테이션처럼 국제 무대에서의 실전 운영 경험을 커리큘럼에 내재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교육은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이자, 산업을 관통하는 운영 체계다. 조리실의 손끝에서 연구실의 데이터, 마케팅의 내러티브, 해외 유통의 레귤레이션까지 하나의 망으로 연결할 때, 한식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복합 문화 콘텐츠’로 성장한다. 이 정교한 생태계의 중심에 교육이 자리할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안정적으로 확장하는 국가적 미식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결론
2025 한식 컨퍼런스는 전통의 맥락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발효 과학을 프리미엄 전략으로 끌어올리며, 대학 수준의 전문 교육 체계를 요구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남겼다. 김치·장·식초로 상징되는 발효 유산은 건강과 맛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과학적 근거를 갖추고 있으며, 요리형 제품·밀키트·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카테고리’가 아닌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더불어 산학 협력, 데이터 표준화, 국제 교류로 설계된 교육 인프라는 셰프·기업·연구자·소비자를 잇는 미식 생태계의 마지막 퍼즐임을 분명히 했다.
다음 단계는 실행이다. 정부는 글로벌 NEXT K-푸드 프로젝트와 연계해 프리미엄 김치 표준과 발효 데이터베이스를 조속히 정립하고, 수출국별 규제 대응과 인증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 업계는 요리형 김치·발효 소스·페어링 가이드로 사용성을 넓히고, 테스트 키친·리빙랩을 통해 신제품 검증 속도를 높여야 한다. 교육기관은 발효 미생물학·식문화사·서비스 디자인·지속가능성·데이터 분석을 포괄하는 커리큘럼을 확립하고, 해외 레지던시와 공동 팝업을 상시 운영해야 한다. 소비자는 지역 장과 제철 김치, 전통 다과를 일상에 편안히 들이는 선택으로 시장의 프리미엄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다.
전통은 살아 움직이는 유산이고, 발효는 한국의 과학이며, 교육은 산업의 가속 장치다. 이 세 축이 정교하게 맞물릴 때, 한식은 세계 미식의 중심에서 더 당당하고 지속가능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계획을 실행으로, 감동을 산업으로 바꾸는 일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