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해망굴 근현대 역사 국가유산 체험

일상에서 만나는 국가유산, 군산 해망굴에서 체험한 근현대 역사 시간여행 군산 해망동과 중앙로를 잇는 해망굴에서 열린 생생국가유산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일상 속에서 체감했다. 국가유산포털로 우리 지역의 유산을 찾아보고, 해설·체험·전시까지 참여하며 근현대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확인한 기록이다.

해망굴에서 시작된 시간의 문, 도심과 바다를 잇다

군산 해망굴은 해망동과 중앙로를 연결하는 131m 길이의 터널로, 일제강점기 군산이 식민지 수탈의 전진기지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도심과 항만을 효율적으로 잇기 위해 뚫린 토목 구조물이다. 암반을 그대로 드러낸 질감, 바람이 스치는 냉기, 터널 입구 주변의 총탄 자국까지, 터널을 통과하는 짧은 시간에 압축된 도시의 시간을 한 겹씩 체감하게 만든다.

해망굴은 여름이면 서늘한 바람이 흐르는 시민의 휴식처였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도 사랑받았다. 그러나 낭만의 배면에는 한국전쟁기 북한군 지휘본부가 내부에 자리했고 그로 인해 연합군의 공습 목표가 되었던 아픈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입구 벽면에 남은 총알 자국은 기록물이면서도 경고문처럼 서 있다. 도시의 표정은 종종 이런 상흔에서 읽힌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군산에는 56개의 국가유산이 등록되어 있으며, 해망굴은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포털에서 지역을 선택하면 위치, 지정사유, 보존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여행 동선을 계획하기에도 실용적이다. 현장에서 해설을 더하면 안내판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이야기의 결이 살아난다. 월명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길목에서 터널의 입구가 열리듯, 해설을 들은 뒤의 해망굴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시간의 문’으로 다가온다. 통과 전과 후의 풍경이 달라 보이는 이유다.

터널의 곡률과 폭, 벽면의 흙 냄새, 드문드문 박힌 배수구의 형식까지 세심히 들여다보면 당시 공법과 도시계획의 관성이 읽힌다. 바다에서 물류가 쏟아지던 항만 도시의 호흡과 보행자의 동선을 함께 품어야 했던 구조적 타협의 결과물이자, 지금은 도시 기억의 저장소로 기능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짧지만 밀도 높은 이 공간을 직접 걸어 보는 일은 책장 속 문장을 꺼내 현실에 대입하는 몰입의 체험이 된다.

근현대 군산의 상흔과 기억, 터널에 새겨진 이야기

해망굴을 중심으로 펼쳐진 군산의 근현대사는 격변과 순환의 리듬을 동시에 지닌다. 일제강점기, 해망동 일대는 쌀 수탈의 집적지였고 터널은 항만과 시가지를 곧게 연결하는 ‘효율’을 위해 추진되었다. 암반을 직접 깎아 낸 난공사 과정에서 조선인 인부 다수가 희생되었으나, 당시 당국은 시신 수습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했다는 지역 구전과 기록이 전해진다. 오늘의 편리함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놓인 구조였다는 사실은, 현장에서야 비로소 실감 난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해망굴 내부가 북한군 지휘본부로 사용되며 연합군 공습의 표적이 되었고, 그 흔적은 입구 주변의 총탄 자국과 파손된 흔들림으로 남았다. 해설사가 손전등으로 가리키는 작은 움푹 패임과 균열 하나하나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사건’의 좌표다. 터널을 빠져나와 월명산 비탈을 오르면 피난민이 모여 살던 자리와 옛 주거 흔적이 이어지고, 다시 도심으로 내려서는 길에서 군산의 시간대가 겹치듯 교차한다. 도시가 품은 기억은 지도보다 발걸음에 더 충실하게 새겨진다.

현장 해설에서 전해진 한 어르신의 기억은 특히 생생했다. “어린 시절 집으로 가려면 꼭 해망굴을 지나야 했는데, 그때의 터널은 한없이 길고 어두워 늘 두려웠다.” 개인의 감각과 두려움, 그리고 성장의 기억이 공공의 구조물과 포개질 때, 해망굴은 단순 시설을 넘어 공동체의 심리 지형을 바꾼 장소가 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잔잔한 장면들이 이곳에서 우연히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터널이 품은 서사적 밀도 때문이다.

근현대 군산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보존-활용’의 선순환이다. 해망굴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지금, 우리는 과거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되 책임 있게 해석해야 한다. 현장 안전을 지키며 흔적을 훼손하지 않는 관람 태도, 사진 촬영 시 플래시 사용 자제, 안내 동선 준수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 위에 시민의 기억 채집, 구술 기록, 학교 연계 답사 프로그램 같은 참여가 더해지면, 해망굴은 도시 전체의 학습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 기억은 지켜질 때 비로소 미래로 전달된다.

체험으로 살아나는 배움, 일상에서 확장되는 여행 동선

생생국가유산 프로그램 ‘돋보기 여행’은 이름처럼 디테일을 확대해 보여 주는 힘이 있다. 국가유산 해설사 김수정 선생의 친절한 인사, 소형 마이크와 통일된 유니폼, 현장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사료 사진과 포인트 지도는 신뢰를 높이고 몰입을 유도했다. 30분 남짓 이어진 해설 동안 참가자들은 터널의 공학적 구조,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 전쟁기의 군사적 이용, 그리고 영화 촬영지로서 대중문화의 기억까지, 해망굴을 가로지르는 여러 층위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설명은 간결했지만 현장은 풍성했고,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자주 ‘아하’의 순간이 스쳤다.

체험 부스는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히 호응이 컸다. 국가유산 모형 키트 만들기에서는 터널의 단면과 출입구 구조를 손끝으로 재현하며 구조 감각을 익혔고, 3D 펜 체험에서는 총탄 자국과 석재 질감을 점·선·면으로 표현해 보며 ‘흔적’의 의미를 창의적으로 해석했다. 에코백 만들기에서는 해망굴과 월명산 실루엣, 파도 모티프를 스텐실로 찍어 넣어 ‘도시+바다’의 상징을 일상 소지품에 새겼다. 반복되는 손놀림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국가유산’이라는 단어에 친숙해지고, 어른들은 장소와 삶을 잇는 디자인 언어를 발견했다.

여행 동선은 간단히 확장할 수 있다. 국가유산포털(heritage.go.kr)에서 ‘전북-군산’을 선택하면 해망굴을 포함한 56개의 국가유산 목록과 위치 지도가 제공된다. 이를 바탕으로 월명산 공원-해망굴-근대거리-초원사진관-신흥동 일본식 가옥 등 ‘걸어서 읽는 근현대 코스’를 구성해 보자. 중간에 지역 빵집이나 카페를 끼워 넣으면 아이와 어른 모두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다음을 기억하면 좋다. ① 유산 표지판부터 읽기 ② 해설 시간 맞춰 방문하기 ③ 체험 부스에서 완성작에 기록 남기기 ④ 포털에 방문 후기와 사진을 등록해 시민 기록을 축적하기. 작은 참여가 모이면 도시의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일상에서 만나는 국가유산’이라는 철학에 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가 사는 동네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장소들이 있다. 해망굴에서 배운 시선으로 동네 다리의 교명주, 오래된 석축 계단, 방치된 표석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역사 지도가 펼쳐진다. 국가유산은 거창한 유적만이 아니다. 우리가 걷는 길, 머무는 그늘, 스쳐 지나던 벽면에도 역사가 켜켜이 퇴적되어 있다. 해망굴에서 시작된 작은 체험이 생활의 감수성을 넓히는 이유다. 결론 군산 해망굴은 도심과 항만을 잇는 실용적 터널이자, 식민지 수탈과 전쟁의 상흔, 그리고 시민의 일상을 동시에 품어 온 국가유산이다. 생생국가유산 프로그램의 해설과 체험을 통해 우리는 안내판을 넘어서는 이야기의 결, 손끝으로 확인하는 구조의 논리, 눈으로 읽는 흔적의 윤리를 배웠다. 국가유산포털이 제공하는 정보와 현장 해설이 결합될 때, 해망굴은 짧은 이동 통로를 넘어 살아 있는 교과서로 재탄생한다.

다음 단계로는 ① 국가유산포털에서 우리 동네 국가유산을 먼저 검색하고 ② 생생국가유산 공식 누리집에서 프로그램 일정을 확인한 뒤 ③ 가족·친구와 코스를 구성해 방문하자. 현장에서는 안전과 보존 원칙을 지키고, 돌아와서는 사진과 후기를 기록해 공유하면 좋다. 작은 관심과 참여가 쌓일수록, 일상의 풍경은 더 다채로운 유산의 지도로 확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