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미식 전통주 벨트’ 안동 여정은 다섯 잔으로 풀어낸 미식 기행이자, 맹개마을부터 금소마을·월영교·선성수상길까지 지역의 풍류를 오롯이 담아낸 이야기다. 전통주 팝업 열차로 시작해 장인의 양조 철학, 누룩과 증류의 과학, 그리고 가양주와 안동소주의 현재진행형 혁신을 현장에서 체감했다. 안동찜닭·간고등어·문어와 어우러진 페어링, 막걸리 빚기 체험, 안동포짜기 시연까지 더해져 여행의 여운이 ‘기억의 잔’으로 달콤하게 남았다.
안동에서 맞이하는 다섯 잔의 여정
맑은 낙동강을 트랙터로 건넌 뒤 만난 맹개마을은 ‘맞이의 잔’을 열기에 더없이 상징적인 무대였다. 메밀꽃이 흩날리는 유기농 밀밭, 토굴 숙성고의 서늘한 공기, 오크 통에서 퍼지는 은근한 향이 한데 어우러져 미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했다. 이곳의 진맥소주는 우리나라 최초로 상업 유통된 밀 소주로, 누룩과 맥아가 전분을 당으로, 효모가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발효의 정석을 충실히 따른다.
알코올이 78도에서 먼저 기화되는 증류의 원리를 소줏고리 앞에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마시는 지식’이 ‘체험하는 깨달음’으로 깊어진다.
22·40·53도로 나뉜 시음은 도수별 향과 질감의 격차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문어·사과·돔베고기 등과의 페어링은 “밀로 빚은 술이 이탈리아 음식과도 어울린다”는 설명을 오감으로 입증했다.
‘다섯 잔’의 구성 자체가 안동 여행의 콘셉트를 명료하게 잡아준다.
- 맞이의 잔: 탁주로 시작해 입맛을 여는 첫 악장
- 풍류의 잔: 칵테일·와인으로 확장된 현대적 해석
- 안동 깊이의 잔: 장인들이 잇는 증류 소주의 정수
- 머무는 잔: 음식과 숙성의 시간에 오래 머무는 호흡
- 기억의 잔: 디저트와 별미로 완성하는 달콤한 피날레
이 틀 덕분에 일정 전반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이동과 체험이 누적될수록 테이스팅 노트가 풍성해진다.
특히 맹개술도가의 저온 숙성실에서는 “공기 중 알코올이 2%쯤 떠다닌다”는 설명이 체감될 정도로 향이 무르익어, 짧은 체류만으로도 기분 좋게 취하게 만든다.
첫날 저녁, 월영교 위로 번지는 야경은 혀끝의 잔향과 겹쳐 여행의 톤을 부드럽게 낮춘다.
맹개마을로 시작한 서사는 ‘지역과 원재료’가 전통주의 출발점임을 다시 확인시킨다. 밀의 생장과 수확, 누룩의 호흡, 증류기의 온도 곡선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현장에서 맡고 보고 만지는 과정은 술을 “병 속의 액체”가 아니라 “시간과 손길이 응축된 생명체”로 전환한다.
이 체감은 이후 만날 ‘풍류의 잔’과 ‘깊이의 잔’을 더 깊게 받아들이게 하는 예열 장치다.
결국 안동에서의 첫 잔은 환영 인사를 넘어, 여행자에게 미각의 좌표와 학습의 동력을 동시에 건넨다.
그리고 그 좌표는 다음 잔으로, 또 다음 잔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통주가 현대를 만날 때: 풍류의 잔과 깊이의 잔
브랜드관 ‘잔잔’에서 만난 ‘풍류의 잔’은 전통의 단단한 기둥 위에서 펼치는 대담한 변주였다. 45도 안동소주를 베이스로 한 하이볼과 칵테일은 불과 드라이아이스를 오가며 향을 포집하고, 시트러스와 허브, 시럽의 층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다.
‘안동한량’과 ‘솥’ 같은 시그니처는 네이밍부터 스토리텔링을 품어, 한 모금에 웃음을, 두 모금에 고개 끄덕임을 이끌어낸다.
덕분에 “독하다”는 선입견은 부드럽고 깊은 뉘앙스에 녹아내리고, 젊은 감각의 바 문화로 안동소주의 외연이 매혹적으로 확장된다.
지역 일자리 창출과 관광 동선의 활력을 동시에 도모한 운영 방식은 지속 가능성 면에서도 모범적이다.
‘안동 깊이의 잔’은 다음 날 본편처럼 전개된다.
박재서 명인의 ‘명인안동소주’에서는 증류수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500년 가양주의 시간을 압축 체험한다.
세대의 전승 속에서도 도수와 향의 미세 조정을 통해 현대 미각에 맞추는 유연함은, 지키되 고정되지 않는 전통의 본령을 보여준다.
이어 ‘민속주 안동소주(조옥화 안동소주)’에서는 경상북도 무형유산 제12호의 위엄과 함께 누룩 빚기 체험이 펼쳐진다.
누룩의 거칠고 따뜻한 촉감, 발효가 시작될 때의 미묘한 온기, 초반의 낯선 향이 익숙해지며 매혹으로 변하는 순간까지, 감각이 서서히 열리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두 양조장의 결은 다르지만 공명점은 분명하다.
- 원액으로 도수를 맞추며 ‘안동소주’의 원형을 지키는 엄격함
- 체험형 전시와 하이볼 클래스 등으로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실험정신
- 재료·누룩·온도·시간을 한 치의 방심 없이 관리하는 장인정신
이 삼박자가 어우러질 때, 전통주는 골동이 아니라 현재형 문화가 된다.
그리고 여행자는 테이스팅 노트의 문장 수만큼, 양조인의 손결을 떠올리게 된다.
잔을 비울수록 이야기가 따라오고,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술은 더 천천히, 더 길게 느껴진다.
미식으로 머무르고 기억하다: 머무는 잔과 기억의 잔
‘머무는 잔’의 무대는 금소마을이었다. 대마씨 차로 노곤함을 달래고, 고택 금곡재에서 안동포짜기 시연을 바라보는 시간은 그 자체로 명상 같았다.
할머니들의 베틀가가 고요를 흔들면, 실과 결처럼 촘촘한 삶의 리듬이 여행의 박자를 정갈히 다듬는다.
연화단지 방앗간에서는 퇴계 가문의 ‘노송주’, 의성김씨 문중 ‘황금주’ 등 귀한 가양주가 안동찜닭·배추전과 조우한다.
집술의 표정은 시간에 따라 미묘하게 변주되는데, 불과 열흘 사이에도 감칠과 산미, 끝맛의 여운이 달라졌음을 혀끝이 알아챈다.
이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일은 곧 ‘머무름’의 기술이자 미식가의 감성이다.
막걸리 빚기 체험은 여행의 정점을 찍는다.
쌀을 씻고, 누룩을 비비고, 온도를 맞추는 단순해 보이는 동작마다 생명이 깃든다.
발효가 숨 쉬는 소리를 귀로 듣고, 미세한 온기 변화를 손으로 읽으며,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중’이라는 현재진행형의 감동을 온전히 체득한다.
이어지는 테이스팅 테이블에는 안동 지역 막걸리와 수제 두부, 김치볶음이 정갈하게 오른다.
간고등어와 문어, 안동식혜까지 더하면, 염장과 삶기, 발효의 기술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미각의 스펙트럼이 선연히 드러난다.
한입마다 맥락이 있고, 한 잔마다 문장이 있다.
‘기억의 잔’은 사과빵과 참마 약과, 그리고 선성수상길·월영교의 풍경으로 완성된다.
물 위를 걷는 듯한 트레킹의 해방감, 밤빛이 유려하게 내려앉은 다리 위의 설렘은 맛의 잔상과 뒤섞여 감각의 폴리포니를 이룬다.
미식이 경관을 만나면,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험의 서사가 된다.
결국 다섯 잔은 메뉴가 아니라 구성과 흐름, 호흡과 정서의 ‘연출’이다.
안동은 그 연출을 지역의 역사·자연·인물로 촘촘하게 엮어, 여행자에게 오래가는 잔향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 잔향은 다음 방문을 예고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초대장이 된다.
핵심 정리 및 다음 단계 안내
- 안동 ‘K-미식 전통주 벨트’는 다섯 잔(맞이·풍류·깊이·머무는·기억)으로 구성된 체험형 미식 코스로, 맹개마을의 진맥소주, 브랜드관 잔잔의 칵테일, 명인안동소주·민속주 안동소주(조옥화)의 장인정신, 금소마을의 가양주 페어링과 막걸리 빚기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
- 안동찜닭·간고등어·문어·안동식혜 등 향토 음식과의 정교한 페어링, 선성수상길과 월영교의 경관은 여행의 감도를 높여 ‘기억의 잔’을 달콤하게 각인한다.
- 전통은 지키되 고정되지 않고, 현대는 새롭되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 전 일정에 걸쳐 설득력 있게 증명된다.
다음 단계
- 일정과 상품은 코레일관광개발 누리집(korailtravel.com)과 안동시 관광 공식 채널에서 수시로 업데이트되니, 출발일·포함 사항·체험 구성(양조장/가양주/막걸리 등)을 확인하고 예약하자.
- ‘안동 전통주 칵테일 택시’·‘안동관광택시’를 활용하면 이동 동선이 효율적이며, 월영교 야경·선성수상길 트레킹을 같은 날에 묶는 코스가 특히 만족도가 높다.
- 시음 프로그램이 많은 만큼 충분한 수분 섭취와 책임 있는 음주, 편한 보행화와 가벼운 겉옷 준비를 권한다.
- 성수기에는 조기 매진 가능성이 높으므로 최소 2주 전 예약이 안전하며, 계절별 재료와 경관이 달라지니 봄·가을 각각의 테마로 재방문을 계획해도 좋다.
이제, 다섯 잔의 순서를 따라 안동으로 떠날 차례다. 잔을 비울수록 이야기가 차오르는 여정, 다음 페이지는 여러분의 미각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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